처방이 필요 없는 수면제, 나는 ASMR 방송을 이렇게 부른다. 이 약은 주로 일요일 저녁에 복용한다. 늦잠과 오전에 마신 커피 한잔이 불면증을 일으킬 때 방송을 켠다. 그런데 최근 트렌드는 보는 ASMR이다. 유튜버들은 상반신을 노출하여 시청자로 하여금 눈으로 듣는 영상을 유도한다. 그렇게 쬐인 블루라이트는 불면증을 강화시킨다. 소리에 집중하던 방송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시각적 자극에 청각적 안정감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눈으로 듣는 영상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ASMR을 듣는 이유
ASMR은 크게 일상소음, 자연소리 그리고 역할극으로 분류된다. 여기서는 역할극 이야기만 얘기해 보자.
1) 우리는 왜 ASMR을 듣는가?
좋으니까 듣는다.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음성을 듣다 보면 편안함이 밀려온다. 어린아이 때 어머니께서 자장가를 불러주시던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싶은 마음의 촉매제이다. 우리는 그립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
내일도 회사에서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낮춰준다. 그렇게 청각 영상은 나에게 또 너에게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준다.
2) 상상력 자극
역할극을 전문으로 하는 ASMR 유튜버들이 있다. 마사지샵, 이발소, Bar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변신한다. 특정 직업군에게 알맞은 환경으로 무대를 꾸미고 복장 맞춘다. 사전조사를 통해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도 익힌다.
시청자로 하여금 마치 역할극이 진행되는 실제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VR, AR처럼 가상세계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ASMR은 청각으로 상상력을 만족시켜 줬다.
눈으로 듣는 청각영상
불과 1-2년 사이에 노출을 동반한 ASMR 유튜버가 급증했다.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촬영한 썸네일로 시청자를 유혹한다. 썸네일에 홀려 영상을 눌러본다. 매력적인 유튜버가 이야기를 진행한다. 웃으며 얘기하는 모습은 소리보다 영상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 상태로 1시간이 흘러간다.
그런데 다음날 영상에 손이 가지 않았다. 미끼를 무는 것은 한 두번 뿐이다. 노출에 집중한 유튜버에게 사람들 관심은 시들해졌다.
1) ASMR은 듣는 방송이다.
채널 특성상 값비싼 마이크를 사용하면 풍성한 소리전달이 가능하다. 그래서 구독자가 많은 고인물 유튜버들에게 유리하다. 유튜브 수익 일부를 재투자하여 좋은 설비를 갖출 수 있다. 실제상황에 가까운 소리로 구독자를 늘려간다.
그래서 신규 유튜버들은 청각보다 시각요소에 집중한다. 본인의 신체로 어필하여 구독자를 끌어모은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장비가 동일하더라도 경험부족으로 실제와 유사한 소리를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좋은 소리를 만들더라도 시각정보에 정신을 빼앗겨 청각에 집중하지 못한다.
2) 새로운 콘텐츠 부재
선배 유튜버들은 다양한 역할극을 만들어놓았다. 신규진입자가 기존 시장의 파이를 차지하려면 참신함이 필수다. 그런데 ASMR 신입유튜버들은 대다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따른다.
이미 시장에서 충분한 조회수로 검증된 콘셉트만 따라 한다. 장비와 경험부족은 아이디어로 채워야 하는데 당장 구독자 수 늘리기만 집중한다.
3) 높은 접근성과 낮은 수익조건 허들
ASMR 분야 유튜버가 급증하는 이유는 시작이 쉽기 때문이다. 마이크 한대만 있으면 영상 촬영을 시작할 수 있다. 마이크 가격이 몇 백만 원 이상되는 것도 있지만 저렴한 마이크도 가능하다. 역할극이 아닌 귀청소 등의 영상을 제작할 때는 대본 준비도 간단하다.
더욱이 수익조건 허들도 상대적으로 낮다. 유튜브 수익발생조건인 구독자 1,000명과 4000시간 시청 달성에 최적화된 콘텐츠이다. 시청자는 영상을 틀어놓고 잠들기 때문에 한 명당 30분에서 1시간의 시청시간이 확보된다. 다른 채널처럼 영상을 건너뛰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오롯이 시청시간을 확보한다.
ASMR은 듣기 위한 영상이다.
우리는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ASMR은 청각을 자극하는 영상이다. 무대장치, 의상 등은 시청자가 상상을 펼치도록 도와주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방송을 들었을 때 안락함이 느껴져야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침대에 누운 당신의 머리맡 자리가 최상의 포지션이다. 잠자리 친구로 위로해 줄 따뜻한 음성이 필요하다. 불면증에 뒤척이는 나에게 '괜찮아'하며 속삭이는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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